건강정보

  • 다리 당겨서 걷지도 못하는데, 이 나이에 허리에 칼 대서 뭐하겠습니까. 

    그냥 약이나 먹고 이러고 살다 갈랍니다.

     

    진료실을 찾는 70대 이상 척추관협착증 환자들에게 가장 흔하게 듣는 

    체념 섞인 탄식입니다. 한창때는 지리산 종주도 거뜬했다며 씁쓸하게 

    웃으시는 분들을 볼 때면, 척추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백세 시대이고 남은 인생이 20년, 30년이 되는데, 

    고작 '나이'라는 숫자에 갇혀 남은 삶의 질을 통째로 포기해버리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상을 파괴하는 병 척추관 협착증

     

    협착증과 추간판 탈출증을 감별하는 키워드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언제부터 아프셨어요?"입니다. 

    이렇게 물어보면 두 질환의 차이는 극명하게 갈립니다. 

    허리디스크 환자는 "몇 월 며칠,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억' 소리가 난 이후로요"라며 발병 시점을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반면 척추관 협착증 환자들은 십중팔구 "글쎄요, 한참 됐는데... 

    확히 언제부터 인지 모르겠네요"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디스크 파열이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교통사고' 같다면, 

    척추관 협착증은 서서히 끓어오르는 '미지근한 물 속의 개구리'에 

    비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며 척추 주변의 황색인대가 

    두꺼워지고 뼈가 자라나면서 신경이 지나가는 통로(척추관)가 

    좁아지는 퇴행성 질환이라 병의 진행이 가랑비에 옷 젖듯 

    서서히 일어납니다.

     

    초기에는 허리가 조금 뻐근한 정도지만 

    점차 1km, 500m, 100m로 한 번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짧아집니다.

    걷다보면 엉덩이부터 허벅지, 종아리가 터질 듯이 저리고 아파서 

    반드시 쪼그려 앉아 쉬어야만 다시 걸을 수 있는 

    '신경인성 간헐적 파행'이 협착증의 가장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환자들은 점진적으로 좁아지는 보행 거리에 스스로를 적응시킵니다. 

    동네 마트 가는 것도 두려워 외출을 줄이고, 외출할 떄는 

    유모차나 보행기에 의지합니다. 통증을 피하려다보니 활동량이 급감하고, 

    이는 근감소증과 우울증, 전신 건강의 악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게 됩니다.

     


     

    ■ 70대니까 참아라? 숫자가 아닌 

    '라이프스타일'을 봐야 하는 척추관협착증

     

    과거에는 고령의 환자에게 척추 수술은 목숨을 거는 

    큰 모험으로 여겨졌습니다. 

    "나이가 많으니 왠만하면 수술하지 말고 참으라"는 

    조언이 의사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릅니다. 달력에 적힌 '물리적 나이'보다 

    환자의 '생물학적 나이'와 '원하는 삶의 방식(라이프 스타일)'이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70대, 80대라도 평소 관리를 잘해 심폐 기능이 양호하고 

    본인이 "다시 산에 오르고 싶다", "손주들과 손잡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명확한 의지와 활동 목표가 있다면, 이를 되 찾아주는 것이 

    현대 의학의 역할입니다. 그저 목숨만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걷는 '인간 다운 삶의 질'을 지켜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척추관 협착증 수술은 무조건 크게 짼다? 

    진화한 '척추 내시경 신경 감압술'

     

    물론 협착증 역시 초기에는 약물 치료와 신경차단술(주사 치료) 등 

    보존적 치료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걷는 거리가 극단적으로 짧아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거나, 

    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며칠 가지 않는다면 그때는 

    물리적으로 좁아진 하수구를 뚫어주는 수술 치료가 유일한 해답입니다.

     

    환자들이 끝까지 수술을 피하려는 이유는 역시 

    '등을 길게 째고 나사못을 박는 광범위한 수술'에 대한 공포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척추 수술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 뼈대가 되는 것이 바로 '척추 내시경 수술'입니다.

     

    협착증의 내시경 수술은 1cm도 안 되는 작은 구멍을 통해 

    초 고화질 내시경과 미세 기구를 삽입하여 진행됩니다.

    핵심은 '최소 침습(MIS)과 '후관절 보존'입니다. 

    과거처럼 정상적인 등 근육을 크게 벌리고 척추의 뼈와 관절을 

    뭉텅이로 잘라내어 불안정성을 유발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척추를 지탱하는 핵심 구조물은 철저히 살려둔 채, 

    신경을 옥죄고 있는 두꺼워진 인대와 불필요하게 자라난 뼈만 

    정밀하게 긁어내어 통로를 넓혀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세 침습 수술은 출혈이 거의 없고 전신 마취가 아닌 

    척추마취로도 가능하며, 고혈압이나 당뇨 등 기저 질환 있는 

    고령의 환자도 비교적 안전하게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근육 손상이 적어 수술한 당일 스스로 걸어 

    화장실에 갈 수 있을 만큼 회복도 빠릅니다.

     



     

     

    ■ 포기하기엔 너무 이른 당신의 두 발

     

    척추관협착증은 불치병이 아닙니다. 

    세월의 훈장처럼 낡아버린 척추를 완전히 새것으로 되돌릴 수는 없어도, 

    현대 척추 의학은 내시경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통해 

    환자가 다시 두 발로 자유롭게 걷고 남은 생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환자분들이 "이러다 말겠지". "늙어서 그러려니"하며 

    끓기 시작하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더 악화되기를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걷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면, 걷다가 쉬는 주기가 점점 짧아 진다면, 

    주저하지 말고 척추 전문의와 상의하여 

    다시 한번 활기찬 인생 2막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었으면 좋겠습니다.

     

    글_인천사랑병원 척추신경외과 정도균 과장

     

등 록 일 : 202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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